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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이야기 8

OS/2=오투

8 비트 컴은 프로그램은 짜야하며 레지스터, 어드레스, 마이크로 프로그램밍 등 컴에 대해 세세히 알게 해 주었으나 16비트 2/386으로 이동하며 일반인은 이제는 가전제품과 같이 작동법 만 알면 되었다. 점점 복잡해지고... 할 일이 없어 C-language를 공부해 보겠다고 두꺼운 책을 사고 Turbo-C를 깔고 프로그램밍 후 컴파일 해보고 실행해보고... 그러다 마음이 떠나고 컴보다 다른 일 에 목숨거는 나로서는 기본 바탕도 없어 역시 C는 응용 프로그램밍처럼 퀴즈 못 푸는 것 같지 않고 무미건조한 맛만 남겼다. 몇 년 지나 기운 날 때면 한번 해볼까하다 지레 포기한 곤했다. 잘했지 왜 고생해. 이 책도 몇 권이 있지만 버리고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러던 중 고속버스 터미날 책방에 컴 부문이 있는데 컴 책 구경하러 갔다. 윈NT와 오투를 저울질하는 사람을 만났다. NT샀으면 좋겠는데 워낙 비싸 오투는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윈3.1이 어떻고를 떠나 잦은 다운으로 신뢰성이 크기 떨어졌다. 넷워킹을 보다 응용 프로그램이 문제 되도 시스템이 다운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여 NT나 오투를 검토하는 것이다. 통신에서 나오는 오투 이야기며, 오투 책이며... 나는 오투란 말을 들으며 먼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처럼 기대를 했다. 통신에서 하는 사용자의 이야기도 동경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멋있잖아요. 직관적인 사용 방식에 안전성, 완벽한 멀티태스킹에..." 결국 영문 OS/2 2.0을 구입했다. '93년인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복사판을 구입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으로 20장 정도인가(?)데 7만원이나 줬다. 집에 와서 설치하는데 몇 시간 끝에 어떻게 해서 됐다. 486에 8메가 램은 되어야 되는 운영체제였다. 프로그램 깔 때 처음에 나오는 회사 로고는 마음을 더 들뜨게 한다. IBM 로고가 나오고 설치 후 리부팅하면 나오는 OS/2 화면 그 것만으로도 타제품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다시 제대로 설치해보려니 되질 않는다. 사실 설치조차도 너무 어려웠다. 마치 최고수의 무술을 배우는 것 같다(몇 번해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처음 해보는 사람은 그 복잡함에 감탄할 것이다).

8메가로 램을 증설했다. 설치되지만 속도는 대단히 느렸다. 부팅 시간을 기록해 놓았는데 3.2분 정도였다. 따라서 도스와 오투 듀얼 부팅이나 부팅 매니저로 도스를 먼저 사용할 수 있으나 이러면 도스만 사용하게 되어 아예 오투로만 부팅 되게 하여 사용하였다. 키보드 작동 문제가 있어 보드 제조업체인 상정 A/S(청담동)에 가서 보드의 키보드 칩셋도 교환 받았다. 오투의 부팅 매니저는 다중 OS를 사용할 때 가장 좋다. 쉽고 편리하게 여러 운영 체제의 사용을 가능케 한다. 오투는 도스와 윈도우 3.1을 포함하고 있다. 도스를 여러 개 띄우고 윈도우도 여러 개 띄우고 물론 오투 프로그램도 여러 개 동시에 띄워 사용할 수 있다. 각각의 도스 세팅(한글, 영어, 메모리 등)이 가능하다. 또 영문 오투에서 한글 윈도우 사용하기가 유행이었다. 이 때는 아마도 Full-mode로만 가능했을 것이다. 윈도우는 오투에서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윈도우31을 창 모드로도 실행 가능하다. 도스와 윈도우 사이의 자료 이동도 가능하다. 도스보다 도 좋은 도스 윈도우보다 더 나은 윈도우 그리고 오투.

다시 386은 486으로 바뀌어야 했다. 시피유는 DX2-50인데 66으로 (신기하게도, 이상하게도, 운 좋게도)작동한다 하여 좋은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더 주고 교환했다. 30핀 램이 16메가인 보드로... 이 시피유는 소위 오버클러킹한 것인데 이 때는 몰랐다. 오투 쓰는 사람은 모두 매니아였다. 마치 맥 사용자 같다. 도수와 윈도우를 싫어하며 OS/2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어디 가든지 이야기는 오투로 가고 침 튀기며 말해야 했다. 한글 오투 2.0에 이어 영문 오투 3.0 워프가 나오고 한글 워프는 오투 사용자 협회를 통해 싸게 살 수 있었다. 오투용 한글도 나왔다. 통신은 독일 것(ZOC)이 유명하였다. "바보"인가 하여 사용자가 만들어 올린 것도 좋았다. 인터넷은 오투로 했다. 지금도 윈도우 95에서 오래 지난 후 인터넷을 다시 설치하려면 한참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 때에 오투에서 인터넷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엄청 느리지요. 14400이라면. 인터넷 할려면 회사나 학교 랜을 이용하거나 모뎀이 훨씬 더 빨라라 되겠지요. 인터넷 브라우져는 화면에 로고가 움직이는데 알다시피 익스플로는 지구가 돌고, 먼저 나온 네비게이터에서는 유성이 떨어지고 IBM인 만든 오투용 브라우져에서는 제비우스 게임에서 나오는 네모난 쇠판 같은 것이 움직여 온다. 하이텔 메뉴 방식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자동 실행 스크립터를 잘 작성해야 한다. 전화 접속 서비스 프로그램이 영문이어서 하이텔 등과 호환성 문제로 이상한 문자로 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한글 워프 때가 오투가 잠시 빛을 발했던 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오투에는 네트워킹 기능이 막강하여 오투 서버 버전(오투 4.0부터는 기본이 서버로 마치 윈2000이 윈 NT server version이면 그렇게 된다)은 유럽, 호주, 중국 등에서 인정되고 안전한 네트워킹 구축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95 년 가을에는 DX4-100 열풍이 있었다. 펜티엄이 나왔으나 비싸서 일반 유저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시피유 전압이 3.3 볼트로 기종 인텔보다 낮아 메인보드에서 전압 조정을 해야한다. 시피유는 AMD 것으로 인텔 펜티엄의 낮은 클럭 시피유보다 더 낮다고 했다. 메인보드는 베사와 피시아이의 고민 끝에 배사로 했다. 빠른 하드 속도를 이용하기 위해 사이드쥬니어도 샀다. 사이드쥬니어는 첫째 LBA모드로 500 메가 이상의 하드를 사용케 한다. 오투나 리눅스 둥 도스 외의 오에스를 사용하는 시스템에게는 LBA니 하는 개념도 불필요하다. 둘째 PIO 모드 4를 지원하여 하드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셋째로 IRQ 14외에 15도 지원하여 최대 4 개의 주변 기기가 연결 가능하다. 물론 486 PCI 보드와 펜티엄 보드에서는 이 기능이 모두 내장되어 있다.

또한 오버클럭킹이 논의되며 무엇인지가 확실히 알려졌다. 이제는 오버클럭킹이 되지 않는 시피유는 소위 리마킹 제품으로 잘못된 것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100 MHz는 33x3이며 40 x 3(120)이 되질 않았다. 만원 더 싼 80 MHz 486 시피유는 40 x 2는 물론 33 x 3으로도 오버클락킹이 잘되었으며 120도 되지는 않았으나 시스템이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다운되었다. 이 실험으로 80 샀다 100 으로 바꾸고 다시 80으로 바꿨다. 어떻게 보면 이때의 100 시피유는 대부분 리마킹 제품인 것 같다.

앞에서 논한 하드 속도가 큰 장애가 되는데 운영 체계가 커지다 보니 초기 부팅 시간이 도스에 비해 크게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하드 용량 증가와 더불어 하드 회전 속도도 증가되어 더 빠른 억세스를 가능케 하나 소음과 진동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다. 마치 요즈음 32-40 배속 시디롬처럼... 560 메가 하드가 도스 한계였는데 이를 LBA로 넘어서며 800메가, 1기가, 1.2 기가, 1.6 기가로 증가되었다. 이 대 속도는 800 메가가 되면 크게 발라지며 1 기가가 가장 빨랐다. 1.2 기가부터는 다시 조금씩 느려졌다. 소음은 500 > 800 > 1 기가로 커져서 소리가 대단히 났다. 1.2 기가가 따라서 속도도 빠르고 소음도 많이 좋아져서 이 용량의 하드를 오래 사용했었다.. 웨스톤 디지탈의 캐비아 하드 1.6 기가가 이 시절 가장 빠르다고 소문나서 사서 보았더니 퀀턴 1 기가와 거의 같던가 했으나 역시 소음은 1.2 기가보다 더 했다(1 기가 보다 났지만). 지금은 4기가 6기가로 용량은 쫓아갈 수 없게 커졌고 소음도 크게 문제되지 않고 속도도 UDMA지원으로 더 빨라졌다.

(오늘 퀀텀 1.2 기가를 7 만원에 사서 돌려봤는데 소음이 심하여 옛 날(?) 하드 소음으로 고통받던 때가 생각났다.)

파란 화면에 IBM 문자가 나타나는 설치 화면만 봐도 눈물이 흐르는 듯 한 감격을 누리던 때를 지나 오투 4.0 멀린이 출시되었다. KOEX에서 한 발표회 참석하여 혹시나 정품 하나 추첨에서 받았으면 하며 열심히 끝까지 남았으나 '꽝'으로 끝났다. 윈95 출시로 떠들썩했지 만 전혀 신경도 쓰여지지 않았다.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엔 그렇지 했다. 그러나 멀린은 윈 3.1은 포기하고 윈 95는 지원하지 않았다. 홀로 서기(?)인 셈이다. 서버 기능에 음성 인식 시스템, 오브젝트 지향성으로 획기적으로 발전되었으며 초기 화면과 유저 인터페이스도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려면 하드웨어가 더욱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드웨어 발전 속도가 더 빨랐어도, 지금과 같은 하드웨어 환경에서 오투가 윈도우와 경쟁하게 되었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항상 따라나오는 말, 비운의 OS라고...

하여튼 끝까지 버티던 486을 마감하고 펜티엄 100(75로 오버클락킹) 시피유와 보드를 중고로 샀다. 보드는 유명한 ASUS사 것으로 133까지만 지원되는 것으로 지금도 사용 중이다. 시피유와 보드를 25만원인가 샀는데 지금은(99년 2월) 한 5-6 만원 정도이다. 펜티엄은 MMX-166-200을 끝으로 마감하고 이제는 펜티엄 II시대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펜티엄이 되어 영문 멀린을 설치하고 나서 한 동안은 음성 인식으로 "웨이크업"하면 컴이 동작되고 아주 쉬운 영어를 굴려가며 또렷하게 천천히 혼자 컴에 대고 떠들곤 했다." "I am a boy." "Are you ready to go to home?" 램 16 메가가 최소 사양이고 32 메가면 원활히 돌아간다는 말에 32 메가로 증설했으며 하는 바람이 컸으나 사정상 3년 후인가 오투를 포기하고 나서야 16-32 메가로 올릴 수 있었다. 통신에선 '16 메가와 32 메가의 차이'로 나를 괴롭혔지만...

도대체 왜 컴을 사용하는가? 하는 회의와 함께 오투를 포기하게 되었다. 포기하게 된데는 끝없는 업그레이드와 이에 따른 "돈" 그리고 발전하는 윈용 '어플' 등 이유야 많지만 그 놈의(?) 오투용 아래한글도 큰 몫을 했다. 도대체 저런 소프트웨어가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버그 투성이로 잘못된 것이 더 많고 조그마한 성의도 없이 막가파(?)처럼 만든 것, 오투의 자료나 윈도우의 자료를 이용할 수가 없으니 차리리 도스용 한글을 쓰지... 아래한글과 IBM에 문의, 항의하였으나 뻔한 답,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100억 이상을 IBM에서 한글에 투자하고 윈용 한글을 오투용으로 포팅 시킨 것인데...이때는 졸업 논문으로 이러쿵저러쿵 하고 컴에 신경 쑬 수도 없어 오투를 포기하게 되었다. 윈용 아래한글로 논문을 30 % 정도 작성하다 이도 포기. 역시 한글 워드 5.0인가 6.0인가로 바꿔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윈용 한글이 더 나아져 지금은 사용 가능하게 되었지만...

오투 소포트웨어를 다 처분하고 지금도 오투동에 들러 새로운 소식이 없나 한 번씩 들러 본다. 이제는 항의도 미련도 억울함도 다 사라졌다. 한 때는 오투 판권을 나에게 주면 한국에서 이렇게 변형하여 이런 방향으로 접근하여 판매하면 가능 할텐데.. 하고 전세계를 독점하고 멋대로 컴 세계를 끌고 가는 MS에 대항하는 조그만 힘이 될텐데...

오투를 써와서 윈95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몇 년을 듣지도 보지도 못 했다. 다른 실험실에서 윈95를 바라보며 워드를 사용해보려고 해도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멍하고 있었다(사실은 이런 게 너무 좋았다(?). 난 윈95같은 것 전혀 몰라요. (넌 이런걸 쓰니) . 끌 때도 마찬가지이다. 시작 버튼을 눌러 끈다니 시작이 왜 끝이야? 채팅 등에서 나가질 못해 "esc: 도 콘트롤 X ,C , quit등 쳐보며 헤매다가 아예 파워 스위치를 껐다는 이야기와 같기도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