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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이야기 4

국내 PC 태동

PC8001을 가지고 한 석 달을 밤 세웠다. 청계천에서 진짜 싸구려 조립 모노 모니터를 사서 붙였다. 엄청 좋지 않은 것이었다. 청계천에는 칼라 모니터도 있었다. RGB 형으로 지금 것과는 다르지만 하여튼 환상적이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버도 없어 카세트 테이프에 저장하고 다시 로드해야 하는데 이때 팩스나 통신에 접속되어 나는 "삐익-"하는 소리가 나는데 나에게는 음악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FDD만 있으면 어떤 프로그램도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만들 수 있을 텐데... 게임을 만드는 일이 역시 즐거웠다. 3-5-7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이기는 수순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해서 단순화해야 한다. 문자용으로는 될 수 있으나 역시 그래픽(?)을 보여줘야 '어필'할텐데 이 것은 상당히 고단한 작업이며 나는 결국 포기했다. 아이디어와 전체 개념만 갖고 있고 구체화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좋을 텐데... 아무 것도 아닌 이 프로그래밍에 밥도 제때 못 먹을 지경이었었다. '뽕뽕'을 베이식으로 짜니 프로그램이 길어짐에 따라 점점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텍스트 모드에서 간단히 만들어 봤다. 지구 방위대 비행기는 제트기처럼 만들어 자판 입력에 따라 좌우로 움직이며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총알이 발사되는데 총알을 "i"로 했다. 우주선은 그림 문자 몇 개로 만들어 위에서 이리 저리 '랜덤'하게 움직이며 폭탄을 투하했다. 폭탄은 "♥"로 만들었다. 총알이 우주선이나 폭탄이 비행기에 맞으면 폭발 루틴으로 보내 터지는 모양을 흉내내도록 했다. 잘못되어 "하트"가 바닥에 쌓이고 총알이 옆으로 움직여 가기도 했다.

애플 컴과 조립식 애플 컴이 돌아다닐 때였다. 형도 자극을 받아 애플 컴을 하나 구입했다. 나는 PC8001이 애플보다 훨씬 더 나은 기종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 컴을 화사에 가지고가 FDD(5.25" FDD 2대가 붙어 있는)와 모니터를 회사 돈으로 사서 붙였다. 설계를 자동화 해보려는 노력이었다. 스프레드시트로 N-Clac가 있었다. 애플은 Visi-Calc인가 였고. 스프레드로 계산하고 이 자료를 베이식과 연결하여 처리하고 출력하는 개념이다. 자료를 스프레드시트로 데이타베이스화하고 이를 베이식 프로그램에서 불려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내 컴퓨터 전시전에는 외국사가 컴과 프로그램을 갖고 와 선전하였다. 안 되는 영어로 스프레드시트의 자료를 베이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를 물어봤으나 허사였다. 이때도 내가 하는 일을 모두 컴으로 하여 종이 없는 매 책상,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 바램이었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하나하고 나는 괴로워했다. 아무리 컴이 좋아진 지금도 무리인 것을...

회사에서는 자격증 취득에 도움을 주고자하여 학원에 보내 줬는데 나는 정보처리 기사 시험을 목표로 여의도 학원에 3 달인가 다녔다. 주로 대형 컴퓨터 기준의 설명으로 가슴에 와 닿기보다는 개념적이었다. 하여튼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시험 결과는 낙방이었다. 통계와 적분 등의 수학도 취약점이었다. 참 이때 집사람과 만나는 중이었으며 자연히 공부도 소홀히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등포역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일년간 교육받으러 다녔다. 2 시간 강의였는데 회사 출근하여 학원에 갔다 돌아오면 점심 시간이 넘었다. 주로 프로그램밍이 주였는데 포트란과 코볼은 뭐 베이식과 비슷하여 큰 문제되지는 않았다. PC가 아닌 대형 컴퓨터의 터미날을 가끔 이용하여 실습 받기도 했다. 프로그램은 학원 측에서 종이 카드에 펀치하여 입력시킨 후 돌려봐서 그 결과를 다음 날인가 각자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인터프리터에서 떠나 컴파일러를 느껴보며 가까이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책을 무척 사고 봤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필요 없는 것을. 마이크로 프로그램밍(Z80). 시스템 프로그램밍(롬에 있는 시스템 프로그램 해석과 연구). 또 응용 프로그램으로는 "Ward Star", "D-Base"로 워드프로세서가 없는 현실에서 아! 이런 소프트웨어가 하고 놀라며 왜 이를 사용하지 않고 타이프를 쓸까 의아해 했다. 언급되지도 않은 많은 책을 포함한 모든 책은 영어였다. 책을 싸놓으면 내 키만큼 되었다. 대단한 컴퓨터 전문가처럼 생각되었다. 현실화되지 않은 채 내 상상에 이 모든 것이 보태졌다.

여러 회사에서 PC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XT, AT가 나오기 전이다. 한계에 부딪힌 나는 컴에서 멀어졌다. 대우, 삼보 등에서 패밀리 컴 등이 쏟아져 나왔다. 별안간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조그만 컴에 놀라고 온 나라가 난리였다. "우스운 애기군. 겜이나 많이 해라" 회사를 다시 옮겼다. 과장으로 계동에 있는 회사로 갔다. 정말 바쁜 곳이다. 아침 7시면 출근하여 저녁 11시에 퇴근(아니 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표현하였다) 하였다. 추석 연휴 3일간도 나가 일 했다. 이제 PC는 IBM의 XT와 AT가 나오고 있었다. 타 회사 컴퓨터는 "MSX"로 IBM에 대항했으나 곧 와해되었다. 이 16 비트 컴의 위력은 대단했다. 삼성과 현대 등도 IBM 호환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AT가 2백 만원 조금 넘는 듯 했다. 이 것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텐데... 같이 근무하던 한 과장은 갖고 싶어 안달이었다. 도스와 한글화가 이때일 것이다. 워드 프로세서로는 삼보의 보석글, 금성의 하나글 등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컴은 타지기 대신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나는 도스 명령 몇 즐 알고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컴은 돈인 것이다. 돈 많으면 좋은 컴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주로 사용한 것은 스프레드시트인 로터스이다. 여기에서 견전서를 주로 만들었다. "/" 키를 치면 메뉴가 나오는 것이었다. "D-Base"에서 "."으로 명령을 시작하듯이...